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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4대 궁

서울 4대 궁 4탄 <조선시대의 궁궐, 덕수궁> 안녕하세요. 판다롱입니다. 서울 4대 궁궐 마지막 덕수궁입니다. 조선시대의 궁궐, 덕수궁 덕수궁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로 피난 갔던 선조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왔을 때, 월산대군 저택과 그 주변 민가를 여러 채 합하여 '시어소'로 정하여 행궁[정릉동 행궁]으로 삼았던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후 광해군이 즉위한 후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경운궁'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궁궐의 모습을 갖춘 덕수궁은 인목대비 유폐와 인조반정을 겪으면서 규모가 축소되었고, 특히 인조가 즉위한 이후 즉조당과 석어당을 제외한 나머지는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이로써 덕수궁은 더 이상 왕이 공식적으로 머물며 국정업무를 보던 궁궐의 기능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난 이후 덕수궁이.. 더보기
서울 4대 궁 3탄 <조선시대의 궁궐, 창경궁> 안녕하세요. 판다롱입니다. 서울 4대 궁궐 세 번째 창경궁입니다. 조선시대의 궁궐, 창경궁 창경궁은 성종 14년에 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 소혜왕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옛 수강궁터에 창건한 궁입니다. 수강궁이란 세종 즉위년 1418년, 세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거처를 위해서 마련한 궁입니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연결되어 동궐이라는 하나의 궁역을 형성하면서, 독립적인 궁궐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창덕궁의 모자란 주거공간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성종대 창건된 창경궁은 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고, 광해군 8년에 재건되었습니다. 그러나 인조 2년 이괄의 난과 순조 30년 대화재로 인하여 내전이 소실되었습니다. 화재에서 살아남은 명정전, 명정문, 홍화문은 .. 더보기
서울 4대 궁 2탄 <조선시대의 궁궐, 창덕궁> 안녕하세요. 판다롱입니다. 서울 4대 궁궐 두 번째 창덕궁입니다. 조선시대의 궁궐, 창덕궁 창덕궁은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의 궁궐입니다. 1405년 경복궁의 이궁으로 동쪽에 지어진 창덕궁은 이웃한 창경궁과 서로 별개의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하나의 궁역을 이루고 있어 조선 시대에는 이 두 궁궐을 형제 궁궐이라 하여 '동궐'이라 불렀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소실되어 광해군 때에 재건된 창덕궁은 1867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건되기 전까지 조선의 법궁 역하을 하였습니다. 또한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입니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창덕궁은 응봉 자락의 지형에 따라 건물을 배치하여.. 더보기
서울 4대 궁 1탄 <조선의 으뜸 궁궐, 경복궁> 안녕하세요. 판다롱입니다. 서울 4대 궁궐 첫 번째 경복궁입니다. 조선의 으뜸 궁궐, 경복궁 경복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조선 전기에 창건되어 정궁으로 이용된 궁궐. 정궁. 사적입니다. 사적 제117호. 도성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궐이라고도 불리었습니다. 경복궁은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입니다. 북으로 북악산을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세종로)가 펼쳐져, 왕도인 한양(서울) 도시 계획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고종 때인 1867년 중건되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중건된 경복궁은 500여 동의 건물들이 미로 같이 빼곡히 들어선 웅장한 모습이었습니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 시..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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